제목 : The King of Fighters XIV (더 킹 오브 파이터즈 14)

장르 : 대전, 격투

제작사 : SNK Playmore

플랫폼 : Playstation 4

발매년도 : 2016년

<본 리뷰는 직/간접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징크스(Jinx). 불길한 일 또는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운명적인 일. 80~90년대 아케이드 시장에서 이름깨나 날리던 게임제작사 SNK(현 SNK Playmore)는 징크스가 하나 있다. ‘SNK는 3D 게임을 만들면 반드시 실패한다’ [Metal Slug], [Samurai Spirits], [The King of Fighters] 등 SNK를 대표하는 작품들은 모두 2D 게임이다. 각 시리즈는 충분한 흥행과 함께 아케이드 게임 시장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아케이드 시장의 축소와 몰락 직전까지 많은 게이머와 함께했을 만큼 꾸준한 인기를 구가한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대단한 명성을 가진 작품들도 3D로 제작이 된 경우에는 어김없이 실패를 맛보게 되었는데, 단순히 상업적 실패만 한 것이 아니라 어색한 그래픽, 달라진 게임성, 밸런스 붕괴 등 여러 방면에서 혹평을 받게 되었다. 물론 처음에는 새로운 도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행착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SNK는 여러 번에 걸쳐 제작/발표를 시도했음에도 개선되는 모습이 보이지 않고 실패를 반복하게 되었다. 결국, 게이머들은 SNK가 3D 게임 제작에서는 역량이 부족하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고, 우스갯소리로 시작했던 SNK의 3D 징크스를 정설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The King of Fighters XIII]의 걸출한 완성도 이후 다시금 3D 제작에 도전한다

불행 중 다행은 2D 게임 제작에 있어 SNK의 역량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오랜 기간을 걸쳐 [The King of Fighters XIII]를 완성해냈고 시리즈 사상 최고의 완성도를 보여주며 높은 평가와 함께 충분한 흥행을 일궈냈다. 이는 회사의 어려운 재정 상황과 2D 그래픽이 가지는 불리함에도 이루어낸 성과이기에 더욱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훌륭한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후속작 [The King of Fighters XIV]이 3D로 제작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팬들은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SNK의 3D 징크스가 다시 일어나는 게 아닐까?’ 그 불안감은 정확했고 트레일러에서 드러난 충격적인 그래픽과 캐릭터 모델링은 [The King of Fighters XIV]에 대한 게이머들의 기대감이 바닥을 치게 했다. 하지만 이런 불안감과 허탈함도 잠시, 짧은 주기로 공개되는 트레일러들을 통해 점차 그래픽이 개선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여전히 어색하고 부족해 보이는 그래픽이었지만 점차 발전되는 모습을 통해 [The King of Fighters XIV]에 긍정적인 반응을 표하는 사람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만 그만큼 게이머 사이의 갑론을박이 있었고 부정적인 시선을 보이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많은 것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발매! [The King of Fighters XIV]를 산 사람들의 대부분은 팬심으로 구매했을 것이지만 불안감이 없을 순 없었다. 그리고 불안감을 가진 채 뚜껑을 열어보았다. 그런데 예상 밖의 반응이 터져 나왔다. “징크스는 깨졌다!”

볼만한 3D 그래픽을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현세대 그래픽치고는 많이 부족하다

먼저 말이 많았던 그래픽을 살펴보자. 첫인상을 그대로 말하자면 [The King of Fighters XIV]의 그래픽은 썩 훌륭하지는 않다. 트레일러만큼 충격적이진 않지만 같은 장르, 그리고 2D에서 3D로의 변화라는 같은 과정을 거친 [Street Fighter 4]나 [Guilty Gear Xrd]가 보여준 혁신적인 그래픽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2D의 느낌을 살리거나 새로운 표현 방식을 사용한 것이 아닌 그저 2D 캐릭터를 3D로 단순 재구성을 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 더군다나 비교 대상이 되는 두 작품은 수년이나 먼저 발매되었음에도 더 뛰어난 그래픽을 가지고 있으니 [The King of Fighters XIV]의 그래픽이 더 나빠 보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캐릭터마다 모델링(modeling)과 모션(motion, 움직임)의 질적 차이가 꽤 크다. 일부 캐릭터는 2D 시절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모델링의 완성도가 높고 움직임이 자연스럽다면, 이외 다른 캐릭터는 모델링의 완성도가 떨어지며 움직임이 전반적으로 부자연스럽다. 그러다보니 게임을 하는 내내 어색한 움직임이 눈에 거슬리게 된다. 이는 화려한 움직임과 멋진 콤보 같은 시각적 요소로 게이머의 시선을 사로잡아야 하는 격투 게임의 특성상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하게 된다. 다만 과거 3D로 제작된 [Metal Slug 3D], [Samurai Spirits Sen], [The King of Fighters : Maximum Impact]에 비해 크나큰 발전을 이뤘다는 점과 동일 장르의 작품과 비교하지 않고 조금만 양보한다면 ‘나쁘지 않고 봐줄만한 그래픽'을 표현해냈다는 점은 그나마 위안으로 삼을 수 있다.

달라진 조작감 - 기존 게이머들의 불만이 있긴 하나 크게 문제 될 정도는 아니다

조작감도 조금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는 점프, 달리기, 백스텝, 구르기 등 이동 관련 조작에서 나타났다. 이동 시스템 자체는 전작과 동일하나 선/후 딜레이(delay)와 체공시간(지면에서 떨어져 있는 시간)이 미묘하게 달라졌고 전반적인 게임 진행 속도가 조금 느려졌다. 이는 이전 시리즈를 오랫동안 즐겨온 기존 게이머에게는 큰 불편함으로 다가오는데 전작에서 조작하는 감각으로 게임을 할 경우 의도했던 대로 움직이지 못하거나 타이밍을 놓치는 등 문제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필자가 겪은 조작감 변화 사례 1.백스텝 체공시간이 길어져 백스템 직후 잦은 커맨드 미스  2.잔상 점프의 사용이 어려워짐  3.소점프 입력이 어려워짐) 그러나 이러한 조작감의 변화는 1시간 내외로 게임을 하게 되면 금방 적응이 되는 수준이기에 ‘기존 게이머에게 한정된 불만이자 아쉬움'일 뿐 게임 자체의 문제라고 보기는 힘들다. 적응만 된다면 전작과 큰 차이 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으며, 오히려 미묘하게 느려진 게임 진행 속도로 인해 게임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효과를 얻게 되었다.

모든 대전 격투 게임은 초심자들이 넘을 수 없는 높은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쯤 돼서 생각해보아야 할 게 있다면, ’[The King of Fighters XIV]가 어떤 점이 뛰어나길래 징크스를 깨뜨리는 데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다. 비교 대상이 되는 작품들에 비해 너무나 낮은 수준의 그래픽, 캐릭터별 모델링의 완성도 격차, 눈에 거슬리는 일부 어색한 모션, 조작감의 변화로 인한 기존 게이머의 불편함 등 부정적인 내용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덮을만한 성과를 본작에서 일궈냈는데 그것은 바로, 모든 대전 격투 게임의 공통과제인 ‘진입장벽'을 확실하게 낮추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모든 대전 격투 게임은 필연적으로 가볍게 즐길 수 없다. 태생부터 사람과 사람 간의 대결을 목적으로 하는 장르이며 그에 따라 게이머 간 실력 자체가 크게 나타나며, 1:1로 진행되는 게임의 특성상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또한, 게임의 깊이를 더 하기 위해 시스템을 복잡하게 만들 경우 학습해야 할 요소가 급격히 늘어나 게임을 숙달하기까지의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기 때문에 신규 게이머의 유입은 더 줄어들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진입장벽을 낮추면 게임의 깊이가 떨어지고, 그런다고 게임의 깊이를 유지하자니 진입장벽을 낮추기 어려워지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The King of Fighters XIV]는 (후술할 몇 가지 요소들을 통해) 진입장벽을 크게 낮추면서 기존 게이머들이 파고들 만한 깊이까지 갖추는 데 성공했고 초심자와 숙련자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격투 게임을 만들어냈기에 그래픽 측면에서 문제가 있을지라도 징크스를 타파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전작 [The King of Fighters XIII]에서 진입장벽 완화를 시도했지만 사실상 실패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다름 아닌 게임 내 시스템(System). [The King of Fighters XIV]는 시스템을 이해하기 쉽게 간소화하고 몇 가지 새로운 요소를 추가하는 것으로 진입장벽을 많이 낮췄다. 먼저 간소화된 부분부터 살펴보자. [The King of Fighters] 시리즈는 99~01의 스트라이커, 02의 캔슬 모드, 03~XI의 쉬프트, XII의 몇 가지 신규 시스템 등 시리즈를 거듭할 때마다 시스템이 복잡하고 어려워졌다. 이러한 시스템들은 화려한 콤보와 더 깊이 있는 게임성을 갖추는 데 일조했지만, 오히려 초심자가 이해/학습 해야 할 요소가 늘어나게 했고 일정 수준 이상 도달하기 위한 조작 난이도도 높아져 진입장벽을 높이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작 [The King of Fighters XIII]에서 복잡한 시스템은 최대한 없애고 기존 시스템을 회귀/조합/변형하는 것으로 시스템을 구축해 진입장벽을 낮추고자 했다. 그러나 두 가지로 나뉜 게이지(파워게이지/하이퍼 드라이브 게이지) 시스템, 그리고 여기서 파생되는 필살기 사용 조건들로 인해 게임 숙달을 위해 이해/학습해야 할 요소가 적지 않았다. 또한 콤보의 편의성을 높인 신규시스템은 오히려 콤보의 비중을 높이고 종류를 늘리게 되었다. 결국, 진입장벽을 낮추려는 시도는 했음에도 여전히 초심자들에게 어려운 상태로 남게 되었다.

기존 시스템을 단순화하여 이해하기 쉽게 만들었고 콤보의 비중을 크게 줄였다

이러한 이유로 본작 들어서 다시 게이지를 하나로 통합했고, 여기서 파생되는 필살기 사용 조건을 이해하기 쉽게 조정했다. 가령 EX필살기나 MAX초필살기 같은 ‘강화형’ 기술들은 MAX모드를 발동했을 때만 사용 가능하게 변경되었고(MAX모드 = 강화형 기술 사용 가능 이라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조건을 설정) 최종강화기술에 해당하는 CLIMAX초필살기는 게이지 세 개만 있으면 발동할 수 있게 하는 등 아주 이해하기 쉬운 조건으로 변경되었다. 여기에 XIII에서 콤보 편의성을 위해 도입했던 신규 시스템은 그대로 유지하되 모드 발동 중에 가능했던 필살기-필살기 형태의 캔슬을 불가능하게 변경하여 콤보를 단순화하고 종류를 대폭 줄였다. 요약하면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어졌고, 콤보가 간단한 형태로 바뀌고 비중도 줄어들어 초보자들이 쉽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러시 콤보 - 단순하지만 여러 방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얻는 핵심 시스템

추가된 시스템도 살펴보자. [The King of Fighters XIV]에서 러시 콤보(Rush Combo)라는 ‘자동 콤보’ 시스템이 추가되었다. 해당 시스템은 본작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했는데, 콤보를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사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사용 방법은 근접해서 A버튼 연타. 러시 콤보를 사용하게 되면 캐릭터마다 정해진 모션으로 연속적인 타격을 한 뒤 게이지 유무에 따라 필살기/초필살기로 콤보를 마무리하게 된다. 즉, 여러 버튼과 커맨드를 조합해서 사용해야 하던 콤보를 버튼 하나를 연타하는 것만으로 사용 가능하게 되어 아무리 게임을 못하는 사람이라도 콤보 하나 정도는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격투 게임을 처음 접하는 사람의 흥미를 끌어내는 ‘눈요기’ 요소로 작용하는 부가 효과까지 얻고 있다.

그런데 자동콤보 시스템이 조작하는 재미를 반감시키지 않느냐는 우려를 할 수도 있다. 진입장벽을 낮추는 게 중요하기는 하나 콤보를 습득하기 위한 학습 및 노력, 그리고 콤보를 사용하기 위한 조작이 격투 게임을 즐기는 핵심 중 하나이기 때문에 어떠한 노력 없이 콤보를 사용할 수 있는 자동 콤보 시스템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러시 콤보 시스템은 조작하는 재미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러시 콤보는 캐릭터마다 한 종류만 존재하며, A버튼 외에 다른 버튼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 또한, 다른 격투 게임에 등장하는 자동 콤보 시스템처럼 기본기가 적중할 경우 상황에 가장 적합한 기술이 사용되어 자동으로 콤보가 이어지는 형태가 아니다. 반드시 근접해서 약펀치(A버튼)을 맞춰야만 러시 콤보로 이어지기 때문에 발동 조건이 은근히 까다롭다. (원거리 약펀치가 적중해도 러시 콤보로 이어지지 않으며 러시가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거리가 애매하면 콤보가 끊긴다) 이 때문에 러시 콤보가 존재한다고 해서 시도 때도 없이 콤보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더 높은 수준의 콤보들은 플레이어가 직접 연구/연습/숙달해야 한다. 또한 연구에 의해 만들어진 콤보가 아닌 시스템으로 구축된 자동 콤보이므로 캐릭터마다 데미지에 차이가 거의 없어 러시 콤보로 인해 캐릭터 간 밸런스가 붕괴될 일도 없다.

공수 전환에 유용하며 다양한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어 숙련자도 애용하게 된다

재미있는 점은 초심자를 위해 시스템을 개선하여 진입장벽을 크게 낮췄음에도 숙련자들이 파고들만 한 게임의 깊이 또한 여전히 충분하다는 것이다. 러시 콤보는 단순히 A버튼 연타를 통한 자동 콤보로 초심자만을 위한 시스템으로 보일 수 있으나 절대 그렇지 않다. 상대가 압박을 가해올 경우 공격을 끊거나 견제를 하기 위해서는 공격 판정이 빠르게 발생하는 기본기/필살기을 사용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약펀치는 굉장히 효과적인 기본기인데 원거리에서 약펀치를 적중할 경우는 상대의 압박을 한번 끊어줄 수 있고 근거리에서 약펀치를 적중한다면 러시 콤보로 이어져 공격권을 가져올 수 있게 된다. 즉, 러시 콤보의 등장으로 인해 간단한 콤보 사용은 물론 반격도 용이해져 공수 전환이 쉽고 빠르게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더군다나 콤보의 비중이 줄어 기본기의 활용도와 심리전이 늘어난 [The King of Fighters XIV]이기에 기본기에서 연결되는 러시 콤보의 존재는 더 빛날 수밖에 없다.

하나의 게이지로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난 만큼 소비량 및 관리의 중요성도 증가했다

하나로 통합된 게이지도 마찬가지다. 게이지 시스템을 기초로 한 다양한 종류의 필살기 사용 조건과 모드 발동 시 변경점에 대해서는 매우 이해하기 쉬워졌다. 하지만 하나로 통합된 덕분에 운용의 폭이 넓어짐과 동시에 관리의 필요성도 생겼다. 게이지 하나로 콤보에 활용할 수도 있고, 모드 발동 이후 압박을 가할 수도 있으며, 초필살기로 강한 데미지를 줄 수 있는 등 선택지가 많다. 그러나 하나의 게이지로 여러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게이지 소비량이 많아지고 상황에 따라 기회비용까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전작에서 모드, 초필살기, 콤보 등이 다른 시스템으로 어느 정도 분리되 있어 기회비용이 적었다. (간단한 예로 파워게이지가 없어도 모드 및 모드 콤보가 가능했다) 하지만 본작에서는 게이지 하나로 모드, 초필살기, 콤보를 모두 사용하게 되었으므로 기회비용이 발생하고 자연스레 관리의 중요성도 늘어났다. 이는 초심자에게는 크게 체감되지 않는 부분이지만 게이지 하나가 아쉽고 게이지의 유무에 따라 승패를 결정지을 수도 있는 숙련자에게는 중요한 변화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는 99~00 시절에 파워게이지와 스트라이커 호출 게이지가 분리되어 있던 시스템이 01로 넘어오면서 하나로 통합된 시스템으로 적용되자 편의성은 늘어났지만, 게이지 관리가 중요해지고 스트라이커 인원 설정에 영향을 미쳐 더 깊이있는 게임성을 가지게 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01시절 초심자와 숙련자의 스트라이커 인원 설정 선호도만 봐도 시스템의 변화가 얼마나 깊이 있는 게임성을 구축할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선입력 - 초저공 필살기 같은 일반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

표면상으로 드러난 변화는 아니지만 ‘선입력’ 판정이 굉장히 여유 있어진 것도 초심자의 진입장벽을 낮추면서 게임의 깊이를 더하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선입력이란 커맨드 입력 직후 일정 시간 동안 명령어가 유효한 것을 이용하는 일종의 고급 조작법을 말한다. 선입력 이용하면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한 궤도로 기술을 사용하거나 콤보를 강제로 연결할 수 있는 등 활용 범위가 매우 넓다. 하지만 커맨드 입력 후 유효 시간이 아주 짧기 때문에 빠르고 정확하게 추가조작이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실전에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선입력은 숙달 여부에 따라 격투 게임 초심자와 숙련자를 가르는 척도로 작용했고 본의 아니게 진입장벽을 높이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The King of Fighters XIV]부터는 커맨드 입력 후 유효 시간이 길어져 선입력 사용이 굉장히 쉬워졌다. 정확한 입력을 해야 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지만 조작을 여유있게 해도 선입력 활용이 가능해졌기에 초심자도 조금만 연습하면 선입력을 활용한 응용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넉넉해진 선입력 판정은 콤보의 연구를 수월하게 해주고, 더 다양한 선입력 응용기를 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

선택 가능한 캐릭터가 50명이나 된다. 대전 격투 게임 사상 전례없는 숫자!!

진입장벽을 크게 낮추고, 동시에 게임의 깊이도 더한 [The King of Fighters XIV]라지만 이 정도로 징크스를 깼다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하다. 또 다른 특징은 없을까? 가장 인상적인 특징은 50명이나 되는 역대 가장 많은 수의 참전 캐릭터다. 단순히 등장하는 캐릭터가 50명인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직접 선택하고 조작할 수 있는 캐릭터가 50명이나 된다. 믿어지는가? 하나의 작품에서 50명 이상 등장한 대전 격투 게임은 없으며 아마 앞으로도 보기 쉽지 않을 듯 하다. 특히 대전 격투 뿐만 아니라 캐릭터를 골라 게임을 진행하는 장르의 게임들이 DLC(다운로드 컨텐츠)를 통해 캐릭터를 유료로 판매하는 전략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추가 결제 없이 50명의 캐릭터를 사용할 수 있는 특징은 큰 강점으로 작용할만하다. (참고사항 - [Ultimate Marvel vs Capcom 3]는 최종 보스를 포함해 51명, 플레이어가 선택가능한 캐릭터가 50명으로 동일한 숫자를 기록하고 있으나 [Marvel vs Capcom 3]에서 버전업을 하면서 캐릭터 추가를 한 것이니 한 작품에서 50명을 등장시킨 것은 [The King of Fighters XIV]이 최초라고 볼 수 있다)

취향에 따른 캐릭터의 선택폭이 넓어진 것뿐만 아니라 연구할 내용도 많아졌다

플레이어가 선택 가능한 캐릭터가 많다는 것은 몇 가지 효과를 낼 수 있다. 먼저 50명의 캐릭터가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로 인해 플레이어의 취향에 따른 폭넓은 선택이 가능해진다. 초심자에게는 캐릭터의 외형에 따른 직관적 선택을, 숙련자에게는 선호하는 운용 방식 선택에 따른 전략적 선택이 가능하다. 더군다나 많은 수의 캐릭터는 ‘어떤 캐릭터가 있을까?’라는 호기심으로 게이머들의 관심을 끌 수도 있다. 다음으로 많은 수의 등장 캐릭터는 그만큼 연구할 내용이 많아졌음을 의미한다. 대전 격투 게임은 캐릭터마다 공격판정, 운용방법, 콤보 등 단순히 커맨드 리스트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요소들이 존재하며 이는 많은 횟수의 대전을 통해 게이머들 사이에 경험이 쌓여야만 정리/검증이 가능하다. 지금까지 대전 격투 게임을 생각해보면 10명 내외의 적은 수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들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연구가 이루어져야 상성/운용방법/등급 등이 확실히 정리되는데, 50명이 등장하는 게임이라면 얼마나 오래 걸릴까? 정말 오랫동안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며, 그만큼 게이머들이 본작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인기몰이의 핵심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너무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50명의 캐릭터 등장이 가진 진짜 의미는 따로 있다. 1990년대 초창기 [The King of Fighters]가 인기몰이를 했던 이유 두 가지. ‘다른 격투 게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캐릭터’와 ‘플레이어가 동시에 세 명의 캐릭터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특징은 시간이 흐르면서 [The King of Fighters] 시리즈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면 어느 순간부터 게이머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인지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The King of Fighters 96]부터 세 명의 캐릭터를 순서대로 사용하는 시스템으로 고정되었고, [The King of Fighters 97]부터는 30~40명 정도의 캐릭터를 꾸준히 등장시키다 보니 게이머들은 별다른 감흥을 느끼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또한 다른 격투 게임과 차별성을 둔 요소가 당연한 것이 되어버려 캐릭터의 수를 줄이면 비판을 받게 되고(참고 - [The King of Fighters XI]) 그런다고 캐릭터를 많이 등장시켜도 눈에 띄는 장점이 되지는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다. 게다가 크로스오버(cross over)로 시작한 [The King of Fighters] 시리즈의 특성상 자사의 기존 캐릭터를 많이 활용하기에 ‘추억 보정’과 ‘캐릭터 재활용’이라는 언제 비판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약점을 가지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크로스오버 게임이라는 인식이 아직 유효해서 이 부분에 비판은 거의 없었다)

신규 캐릭터 - 정체성을 유지하되 크로스오버 색깔을 탈피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The King of Fighters XIV]는 새로운 전략을 찾기보다는 오히려 과거의 전략을 그대로 활용했는데 30~40명의 캐릭터는 더 이상 많은 수가 아니니 50명으로 수를 늘리는, 다시 말해 더 큰 충격을 주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는 [The King of Fighters] 시리즈가 인기몰이할 수 있었던 이유를 SNK가 잘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이러한 전략이 여전히 유효할 것이라는 자신감과 시리즈의 정체성을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기도 한다. 또한, 50명의 캐릭터 중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진 오리지널 캐릭터가 12명(보스까지 포함하면 14명)이나 되는데 이는 앞서 언급한 ‘추억 보정과 캐릭터 재활용에 대한 비판 여지’라는 약점을 해소하고 [The King of Fighters] 시리즈의 크로스오버 성향을 탈피하려는 시도로써 해석할 수 있다. 물론 50명이나 되는 캐릭터 및 다수의 신규 캐릭터 등장은 차기작에서도 비슷한 수의 캐릭터를 등장시키고 또 다른 신규 캐릭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을 주기에 언젠가 만들어질 [The King of Fighters XV]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하지만 [The King of Fighters] 시리즈는 언제나 많은 수의 캐릭터와 적지 않은 신규 캐릭터를 보여줘 왔으니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며, 이번 [The King of Fighters XIV]에서 보여준 전략을 향후 시리즈에서도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The King of Fighters XIV]는 변화의 시작이자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될 것이다

‘그래픽’을 제외하면 나무랄 곳이 없다. 게임을 가볍게 만들고 진입장벽을 낮추었지만, 숙련자와 기존 게이머들이 파고들만 한 깊이는 여전하다. 그리고 시리즈의 정체성을 더욱 강화하여 50명이라는 전례 없는 캐릭터를 등장시키면서 많은 오리지널 캐릭터를 만들어 크로스오버 성향을 탈피하고자 했다. 또한, 그래픽의 변화뿐만 아니라 더 많은 부분에서 변화를 꾀했고 그 의도가 잘 나타났다. 이 정도면 충분히 성공적이다. 아케이드 시장이 축소되면서 대전 격투 게임의 시대가 끝났고 다섯 손가락도 되지 않는 작품들만이 이름을 날리고 있는 현시점에서 꿋꿋이 시리즈를 내놓는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지만, 많은 실패를 겪은 3D에 도전하여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다는 것이 의미 깊다. 이제 징크스는 깨졌다! 성공적인 변화를 일궈냈으니 이를 바탕으로 더 나아진 모습을 보여줄 일만 남았다.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게임계에서 살아남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기억하자. 앞으로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해 본다.

못다 한 이야기

- 캐릭터 모델링과 모션의 완성도가 가장 뛰어난 캐릭터를 꼽으라면 신규캐릭터 미안(mian)을 들 수 있다. 중국 전통 연극 '천극'을 격투술로 사용하는 캐릭터인데 움직임이 매우 부드럽다. 게다가 천극에서 사용하는 가면술인 '변검'도 잘 구현되어 있어 기술을 사용할 때마다 가면이 바뀌는 것도 매우 인상적이다.

- 본문에서 스토리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았는데, 스토리 모드라고 표기된 부분이 있으니 실상 아케이드 모드와 같다. 애초에 아케이드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시리즈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스토리를 다루는 적을 수 밖에 없다. 다만 이번 [The King of Fighters XIV]는 소니 측의 재정지원으로 Playstation 4 독점 발매를 하게 되었고, 향후 콘솔 선행 발매 이후 아케이드로 넘어가는 방향으로 개발이 진행될듯하니 후속작에서는 스토리 모드도 좀 더 신경을 쓰면 좋다고 본다.

- 캐릭터 간 밸런스는 시간이 충분히 흘러야만 판단할 수 있다. 최약캐라고 분류되던 캐릭터가 최강캐로 급부상하거나 최강캐였던 캐릭터가 중캐로 떨어지는 사례는 정말 많으니 이에 대해서는 차후 판단할 일이다. 조금 걱정되는 점은 캐릭터가 많을수록 밸런스를 맞추기 어려운데 50명이나 등장하니 밸런스가 완전히 붕괴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시간이 흘러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며, [The King of Fighters XIV]에 대한 평가에 반영이 될 것이다.

- 신규 캐릭터 중 일부는 기존에 있는 캐릭터를 차용/조합/분리해놓은 것도 존재한다. 예들 들면 한국팀의 '강일'은 김갑환의 기존 기술과, 김동환([Mark of the Wolves]에 등장하는 김갑환의 장남)의 기술을 섞어놓은 형태이며, 같은 한국팀의 '루온'은 [The Rumble Fish]에 등장하는 '가넷'이라는 캐릭터와 기술 설계가 매우 유사하다. 참고로 [The Rumble Fish]는 [Mark of the Wolves]를 만든 전 SNK 직원들이 세운 회사이며, 이번 [The King of Fighters XIV]의 일부 캐릭터가 [Mark of the Wolves]의 후속작 자료를 토대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연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기술적 문제 ( 사용 플랫폼 : Playstation 4 )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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