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Armello

장르 : 보드, 카드, RPG

제작사 : League of Geeks

플랫폼 : PC

<본 리뷰는 직/간접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게임의 발달사를 따라가보면 다양한 형태의 게임을 만날 수 있다. PC를 이용한 게임부터 시작하여, 양손에 쥘 수 있는 크기의 휴대용 게임, TV에 연결해 즐기는 콘솔 게임, 오락실에서만 즐길 수 있었던 아케이드 게임 등 매우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앞서 언급한 것들은 우리가 ‘게임’이라고 하면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형태이며, 소위 전자오락(Electronic Game Video Game)이라 불리는 게임의 한 종류다. ‘게임=전자오락’이라고 인식하게 된 것은 ‘게임’이라는 용어가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자오락의 대중화 이후로 ‘게임’라는 단어가 전자오락을 통칭하는 다소 축소된 의미로만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자오락의 형태가 아닌 ‘게임’이라 불릴 만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바로 전자오락의 등장 시기에서 좀 더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만날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하는 게임인 보드게임(Board Game)이다.

보드게임 - 전자오락이 나오기 이전에는 물리적인 도구를 이용해 게임을 즐겼다

보드게임의 가장 큰 특징은 ‘물리적인 도구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장기, 바둑도 보드게임의 일종이라 볼 수 있으며, 국내에서 오랫 동안 사랑 받아왔던 [부루마불], 그리고 사람들 간의 대화를 통해 진행되는 TRPG(Table-talk Role Playing Game) 역시 보드게임에 해당된다. 이처럼 보드게임은 전자오락이 등장하기 전부터 존재했으며, 전자오락보다 더 긴 시간을 게임으로서 역할을 해왔을 뿐만 아니라, 전자오락의 개발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놀이’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할리갈리, 젠가 등도 보드게임에 속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의외로 우리 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게임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전자오락의 발달로 물리적인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되면서 전자오락의 대중화와 함께 보드게임은 게임의 한가지 ‘형태’임과 동시에 전자오락의 ‘장르’로 편입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물리적인 도구가 존재하는 기존의 보드게임들 외에도 전자오락의 한 장르로서 보드게임도 만들어지게 되었다.

[Armello]는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영웅들의 여정을 그린 보드게임이다

[Armello] 역시 전자오락의 형태로 만들어진 보드게임 중 하나다. 물리적인 도구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보드게임의 대표적인 도구인 카드, 주사위, 보드(또는 말판), 그리고 말(고유명사 - 고누나 윷놀이 따위를 할 때 말판에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옮기는 패)을 게임 내에 포함하고 있으며, 게임 진행에 중요한 도구로 활용하게 만듦으로써 본작이 보드게임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차례를 돌아가며 진행하는 게임 진행 방식과 카드 뽑기, 주사위 굴리기 같은 확률 요소를 이용한 게임의 진행도 보드게임의 형태와 일치 한다.  

보드게임에 RPG 특성을 집어 넣음으로써 [Armello]만의 개성을 만들어낸다

독특한 점이 있다면 보드게임에 RPG 요소가 첨가되면서 플레이어가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즉, ‘영웅들의 여정’이 정해진 이야기에 따라가는 것이 아닐 플레이어의 선택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는 플레이어들 간의 대화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는 보드게임인 TRPG(Table-talk Role Playing Game)의 특성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보드게임의 특성상 전자오락이 보여주는 그림이나 영상을 통한 스토리 전개는 불가능하며, 선택지가 제공하는 짧은 문장의 사건/사고들 뿐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단편적인 이야기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이야기를 플레이어가 머릿속에 그려나갈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주고 있으며, 플레이어 스스로가 머리 속으로 그려나가는 방법이야말로 보드게임의 스토리를 풀어나가는(또는 즐기는) 진정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RPG 요소가 만들어내는 또 다른 특징은 게임이 진행됨에 따라 영웅의 능력치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Armello]는 영웅들의 능력치를 전투력/신체/정신/지혜로 나뉘며, 각 능력치는 주사위 개수(전투력), 생명력(신체), 마력회복량(정신), 최대 카드 보유량(지혜)에 대응한다. 네 가지 능력치 이 외에도 왕의 신임을 얻는 정도인 ‘명성’과 영웅의 타락한 정도를 보여주는 ‘부패’도 존재한다. 이러한 능력치들 카드의 사용과 그에 따른 전략수입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플레이어의 입맛에 따라 성장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

다양한 카드의 종류는 전략의 풍부함 외에도 시각적 매력도 이끌어 내고 있다

본작에서 주목 해야할 또 다른 하나는 바로 보드게임의 도구로 활용되는 ‘카드’다. [Armello]의 카드는 단발성 효과에 그치는 보너스 개념이 아니라 게임을 진행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열쇠가 된다. 카드의 종류가 다양한만큼 카드별로 지불해야하는 대가(통칭 코스트)도 여러 종류로 설정되어 있는데, 카드 사용의 대가를 지불하기 위한 자원보유량은 영웅의 능력치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영웅의 성장수준에 따라 카드의 활용 방향이 결정된다. 쉽게 말하면 영웅의 능력치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카드의 범위가 정해진다는 것이며, 이에 따라 [Armello]의 카드는 영웅의 성장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게임의 전략 수립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보드게임이지만 전자오락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활용하여 카드를 좀 더 매력적 도구로 만들어내고 있다. 각 카드들은 어느 정도 통일된 디자인을 가지고 있지만 각 카드별로 일러스트를 그린 디자이너들이 모두 다르며, 카드마다 디자이너들의 이름과  사인(signature, 서명)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카드의 그림에 움직이는 효과를 줌으로써 카드의 효과를 좀 더 실감나고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게 만들어두었다.(카드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드갤러리’도 존재하며 카드 일러스트에 많은 공을 들였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승리를 위해서 어느정도 ‘운’이 필요하지만 승리조건 간에 불균형이 존재한다

[Armello]의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한) 방법은 총 네가지가 있는데, 첫째, 왕과 직접 전투를 벌여 왕을 살해하는 방법, 둘째, 영혼석을 모아 타락한 왕을 정화하는 방법, 셋째, 왕을 도와 명성을 높여 왕위를 물려받는 방법, 넷째, 왕보다 더 깊은 타락 상태에 빠져 왕을 굴복시키는 방법이 있다. 이 네가지 방법들은 전략과 게임의 진행 방향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각 승리 조건을 만족시키기까지 난이도의 차이가 존재하기에 승리 조건 사이의 유불리를 발생시키기도 된다. 특히 부패 승리의 경우 ‘왕보다 더 높은 부패 레벨’인 상태에서 ‘왕을 직접 살해’해야한다는 두 가지를 모두 만족해야하므로 난이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 초반에 부패 레벨을 어느 정도 높히지 못하면 사실상 부패 승리는 실패했다고 봐야한다. 또한 정해진 턴 횟수 안에 게임이 끝나기 때문에 게임 중반에 전략을 바꾸기가 어렵다는 문제점도 있는데, 부패 승리 전략이 초반에 실패하여 중간에 방향을 바꿀 경우 게임에서 승리할 확률이 매우 희박해진다. 반대로 명성 승리의 경우 전투를 최대한 피하고 퀘스트와 카드의 효과로 명성을 쌓아가며 소극적으로 게임을 진행하더라도 ‘왕이 자연사하거나 다른 플레이어와 함께 사망할 경우’ 승리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길 확률이 높다.

타락한 왕을 쓰러뜨리고 [Armello]의 왕좌를 차지할 자는 누구인가

승리 조건 간의 유불리가 발생하는 부분은 조금 아쉽지만 다양한 전략, 매력적인 디자인, RPG요소의 가미 등 전반적으로 잘 만들어진 보드게임인 것은 분명하다. 전자오락의 하위 장르로 만들어진 보드게임이지만, 보드게임의 느낌을 잘 살려놓으면서 전자오락에서만 구현 가능한 것들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어느 정도 ‘확률’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플레이어의 전략에 따라 게임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균형을 잡고 있다. 물론 ‘타락한 왕을 쓰러뜨리고 왕좌를 차지하는 영웅들의 여정’이라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게임의 시작-과정-전략-승리까지 통일성을 부여하여 게임의 색깔을 뚜렷히 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못다한 이야기

- 전략적 다양성을 위한 요소로 '캐릭터의 고유 능력'도 있다. 캐릭터의 능력에 따라 유리하고 불리한 전략이 어느 정도 정해져있어서 캐릭터에 특성에 맞는 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일례로 '땜장이 바나비'의 경우 아이템과 관련된 고유 능력이 있어서 장착 아이템에 대한 활용도는 매우 높지만 낮은 정신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법 카드 활용도는 매우 떨어진다.

- 전자오락이라는 점을 활용한 또 다른 부분은 NPC의 존재다. '왕의 경비병'과 '베인'이라는 몬스터는 무작위로 플레이어를 공격하며 이에 따른 변수가 상당히 자주 발생한다. 물론 '왕의 경비병'과 '베인'을 이용하여 전략을 수립하는 것도 가능하다.

- 스토리 전개 측면에서는 '영웅 일지'라는 것이 존재한다. 플레이어가 스스로 스토리를 정리하지 않더라도 게임 내에서 자동으로 영웅의 발자취를 기록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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