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날아라 슈퍼보드 ‘환상서유기’

장르 : RPG, 어드벤처

제작사 : 하나소프트

플랫폼 : PC

<본 리뷰는 직/간접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본 리뷰는 2014년 10월 8일에 작성되었으며, 2015년 4월 18일에 재작성되었습니다.>

지금 한국의 게임시장은 온라인 게임과 모바일 게임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흐름이며 게임을 즐기는 플랫폼의 변화로 인해 나타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은 자연스러운 변화보다는 패키지 게임 시장의 몰락으로 인한 대안으로 등장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한국도 한 때는 패키지 게임이 게임시장의 주류를 차지하던 시기가 있었다. 불과 그 시기가 매우 짧지만 십수년이 지난 지금도 명작이라고 평가받는 게임들이 적지 않았으며,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이런 게임이 한국에서 만들어지다니'라는 감탄을 자아내기도 한다. 하나하나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 게임을 즐겨온 이들이라면 머리 속에 떠오르는 그 게임이 정답일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다시피 국산 패키지 게임의 황금기는 매우 짧았으며, 불법 다운로드, 덤핑CD의 만연, IMF 등 여러 요인들에 인해 한국 패키지 게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짧은 황금기의 막바지에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려던 게임이 있었으니 바로 오늘 소개할 [날아라 슈퍼보드 환상서유기]다.

허영만 화백의 원작만화 '날아라 슈퍼보드'

본 작품을 이야기하기 전, 게임의 바탕이 되는 만화 '날아라 슈퍼보드'에 대해 잠깐 알아보도록 하자. '날아라 슈퍼보드'는 중국의 3대 소설 중 하나인 '서유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어졌으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만화가 허영만 화백의 작품이다. 허영만 화백의 작품은 슈퍼보드 뿐만 아니라 '각시탈’, '식객’, '타짜’ 등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작품들도 많다. 허영만 화백의 작품들은 드라마와 영화로 재탄생하면서 많은 인기를 끌었는데, 슈퍼보드도 그에 못지 않은 인기를 끌었다. '날아라 슈퍼보드’는 TV 방영 당시 주간 시청률이 42.8%를 기록하였고,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그에 힘 입어 2002년까지 5기에 걸쳐 후속작이 이어져왔으며 마지막화 방영 당시에는 52%의 시청률을 찍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환상서유기는 초기의 슈퍼보드를 차용하여 만들어졌으며 그에 따라 미스터 손(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삼장법사는 초기 모델과 동일하게 디자인되어 있다.(주인공 4인과 삼장법사의 벤츠는 동일한 디자인이다.) 그러나 원작 만화를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적지 않은 변화를 주기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삼장법사의 성격변화다. 원작의 삼장법사는 육체적으로 나약한 일행일 뿐이지만 환상서유기에서는 '최강이 격투가가 되기 위해 비구니가 된 승려'다.(게임 속 표현을 빌리자면 호모 땡중) 또한 일개 도적에 불과했던 저팔계가 도적단의 두목으로 등장한다거나, 엉뚱한 이유로 인해 닌자들만의 비기를 배우게 되는 사오정이 게임 내에서 굉장한 활약을 보이는 모습 등은 원작과는 큰 차이를 보이며 색다른 느낌을 주기도 한다.

플레이어블 캐릭터 中 삼장법사(좌), 복면남자(중), 미로(우)

원작 만화을 적절히 변형하면서도 게임에서만 볼 수 있는 오리지널 요소들도 많이 있다. 옥황상제, 우마왕 등 만화가 아닌 원작 '서유기'에서 등장하는 인물들 뿐만 아니라, 옥황상제의 딸 미로, 복면남자이자 천계 대장군인 디트리히, 저팔계의 옛 동료이자 용병인 푸산 등 게임 속의 오리지널 캐릭터도 상당 수 등장한다. 또한 게임 내 세계관도 '서유기'와 '슈퍼보드'의 것을 차용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냈다. 원작 만화를 기반으로 만들어낸 게임이기는 하나 [환상서유기]라는 부제답게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면서 게임 자체가 하나의 독립적인 작품으로 느끼기 충분하다.  즉, 등장인물과 배경 모두 원작(서유기 및 슈퍼보드)을 연상시킬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만 가져오되 나머지는 모두 새롭게 만들어냄으로써 게임 자체의 독창성을 보여주고 있다.

환상서유기 월드맵 - 세계의 크기만큼 방대한 스토리와 '떡밥'을 담고 있다.

등장인물과 배경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스토리의 전개가 환상서유기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스토리의 전개가 환상서유기를 수작이라고 평가하는 가장 큰 이유중 하나일 것이다. [환상서유기]는 원작 서유기와 슈퍼보드를 차용해 만들어졌지만 독창적인 부분이 많은만큼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전개된다.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인물을 10명이나 되지만 각각의 인물은 게임의 전체 흐름과 연관되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며, 10명의 인물을 사이의 관계 역시 적절히 연결되어 있다. (옛 동료, 새로운 연인, 헤어진 가족 등)  더 나아가 적, NPC 등도 주인공들과 관련지어져 게임을 진행하면서 알게 되는 인물간의 관계는 매우 복잡하면서도 흥미로워 진다. 그러는 와중에도 전체 스토리의 핵심이 되는 부분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결국은 하나의 사건으로 귀결되는 진행 방식 또한 스토리가 상당히 깔끔하게 만들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즉, 게임 전체의 큰 스토리가 있으면서 그 아래에 수많은 서브 스토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서브 스토리가 많은 만큼 게임 내에 뿌려진 '떡밥'이 상당히 많다. 이는 게임을 즐긴 뒤에 유저들이 게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여지로 작용하기도 했지만, 그 떡밥들은 [환성서유기]의 비극을 상징하기도 한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환상서유기]는 IMF로 인해 미완성된 채로 발매된 게임이다. 게임의 진행으로는 스토리의 완결을 볼 수 있지만 게임 내에서 등장하는 떡밥들은 그냥 넘어가기에는 스토리의 전개에 중요한 부분들로 작용할 여지가 매우 크다. 그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환상서유기 전체 지도에서 1/4은 사용되지 않은채로 게임이 끝나버린다. (사용되지 않은 북쪽 섬 왼쪽 절반과 서쪽 섬 위쪽 절반은 게임 내에서는 특정 지명으로써 자주 언급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 뿐만 아니라 게임 홍보 자료에 등장하는 화면 역시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볼 수 없는 화면이기에 미완성된 게임인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 외에도 NPC들과의 대화에서 게임이 급작스럽게 나왔다는 것을 대놓고 말해주는 것을 보면 IMF에 환상서유기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NPC는 게임이 시간에 쫓겨 '기형아'가 되어버렸다고 말하고 있다.

급하게 마무리 지어 발매한 게임은 게임 플레이에도 문제가 나타난다. 순차적으로 동료가 합류하게 되는 RPG의 특성상 뒤늦게 합류하는 동료일수록 레벨의 보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새로 합류한 동료의 레벨이 1부터 시작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특정 구간에서 게임의 난이도가 급격하게 상승하기도 한다.(동료의 시체를 방패삼아 게임을 진행해야하는 상황이 나오기도 한다.) 그 뿐만 아니라 게임을 진행하거나 지역을 이동하는 데 레벨의 제한이 정해져 있지 않아 특정 구간에서는 일정 레벨에 도달하지 않을 경우 보스를 이길 수 없어서 게임 진행이 중단되는 경우도 종종있다. 이에 더해 심한 경우 아이템의 구입이나 되돌아 가는 것이 불가능한 구간도 있어서 같은 구간을 실패, 반복하다가 아예 처음부터 게임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캐릭터 간 밸런스 문제라던가 과도한 난이도의 퍼즐은 게임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는 게임을 완성한 뒤 이루어져야 할 테스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세상에 나오게 된 [환상서유기]의 또 다른 비극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 10인의 회동, 그리고 유명한 떡밥 중 하나인 '페어리의 가루'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려고 했지만 나비도 아닌 애벌레도 아닌 그 중간의 무엇인가로 세상에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명작이라 말하고 싶지만 어떤 이유에서라도 덮어줄 수 없는 문제들로 인해 수작에서 그친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무리 IMF가 문제였다고는 하지만 게임이 가지는 단점은 분명하며, 이는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래도 환상서유기는 국산 RPG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고, 국산 명작 RPG들의 한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충분하다. 환상서유기를 즐겼던 여러 유저들은 '이 작품이 리메이크되면 참 좋을텐데…'라는 소망을 표해왔으며, 최근에 환상서유기를 접한 유저들은 '이런 게임이 국내에도 있었구나'라는 감탄하기도 한다. IMF로 인해 미완성된 채 발매된 기형아지만 모두에게 사랑받았던 게임이며,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환상서유기]만큼 우리의 가슴에 깊이 남을 작품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못다한 이야기

- 환상서유기 게임 게시판이 남아있던 시절 게임 내 산재된 떡밥들에 대한 다양한 토론을 볼 수 있었다. 떡밥이 상당히 많아 떡밥에 대한 토론과 더불어 후속작 발매를 위한 의도적 떡밥이 아닌가 기대를 보인 사람도 있었는데, 이는 회사가 망해버린 탓에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는 소리였다.

- 필자의 개인적인 소망이지만 리부트 작품으로 만들어진기를 바라는 단 하나의 작품이기도 하다.

- 전형적인 턴제 RPG인데, 체스판과 같은 형식의 전투로 전략적인 요소가 의외로 많다. 공격 방향에 따른 보너스와 패널티, 속성 공격, 특수 아이템 뿐만 아니라 지형을 이용한 전투까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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