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Cuphead (컵헤드)

장르 : 액션, 플랫포머

제작사 : Studio MDHR

플랫폼 : Xbox One, PC

발매년도 : 2017년

<본 리뷰는 직/간접적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캐나다에서 태어난 형제가 있다. 이들은 게임을 너무나도 사랑했다. [Contra], [Gunstar Heroes], [the Thunderforce] 같은 게임을 즐기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어른이 되면서 게임 제작까지 손을 뻗치게 된다. 그런데 형제는 조금 특별한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형제가 게임만큼 좋아했던 만화영화, 그중에서 1930년대 작품에 대한 기억이 너무나 강렬했기에 그 느낌을 고스란히 게임으로 옮겨보고자 생각했다. ‘뽀빠이’를 제작한 플레이셔 스튜디오(Fleischer Studios)와 ‘미키 마우스’로 대표되는 디즈니(Disney)의 작품이 바로 형제가 만들고자 한 게임의 이미지다.

형제는 어린 시절 보았던 1930년대 만화를 그대로 게임으로 옮기고자 했다

그러나 제작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2000년, 처음 게임 제작을 시도했지만 개발을 지속할 여건이 부족해 금방 중단됐다. 마음만으로는 게임을 만들 수 없었던 게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어느 정도 여건을 마련한 형제는 다시 개발을 시작했으나 상황이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형제가 추구하는 모습을 만들어내기 위한 작업 방식은 현시점에 있어 너무나도 비효율적이고 어려웠다. 하나의 움직임을 구현하는 데에도 엄청나게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했다. 여기에 게임 개발에 집중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재정문제로 은행에 집을 저당 잡히기까지 했다. 게임이 완성하기는커녕 지속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 힘든 시기였다.

그런데도 형제는 포기하지 않았다. 형제가 만들고 있는 게임이 처음 세상에 알려졌을 때, 많은 이가 찬사와 응원을 보내기 시작했으니 포기하려야 할 수 없었다. 형제는 꿈꾸던 게임을 완성할 수 있다는 확신에 가득 찼고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이후 오랜 시간이 흘러 2017년 9월 29일, 형제가 꿈꾸던 작품이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채드-재러드 몰덴하우어 형제 - 사진에서 그들이 방향성이 느껴진다

이 이야기는 런&건 슈팅 게임 [Cuphead]와 제작자 채드-재러드 몰덴하우어 형제의 일화다. 도박으로 인해 악마에게 사로잡힌 컵헤드(Cuphead)와 머그맨(Mugman)이 빚을 갚기 위해 여정을 떠나는 이야기를 담은 본작은 역설적이게도 제작 과정 자체가 도박이다. 게임의 흥행 여부를 그 어떤 작품도 보장되지 않는 마당에 경험이 부족한 아마추어 개발자가 직장을 그만두고 모든 재산을 쏟아 부어가며 제작을 이어갔으니 인생을 건 도박이라 할 만하다. 이러한 몰덴하우어 형제의 모습은 마치 그들의 작품 속 주인공인 컵헤드와 머그맨과 다를 바 없다. 목적은 다르지만, 인생을 건 도박을 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몰덴하우어 형제는 도박은 어떤 결과를 냈을까? 그 모든 건 [Cuphead]의 완성도에 달려 있을 게다. 지금부터 살펴보자.

고전 만화를 게임으로 옮기거나 핵심 컨셉으로 삼은 경우는 이전부터 있었다

[Cuphead]가 최초로 공개됐을 때 사람들이 열광한 이유는 1930년대 만화를 초점으로 삼은 독특한 컨셉에 있다. 다만, 이전에도 20세기 초중반 만화의 디자인을 핵심으로 삼은 게임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그저 컨셉만으로 주목받은 건 아니다. 본작이 주목받은 이유는 1930년대 만화를 컨셉으로 삼은 것을 넘어 게임에 담긴 모든 시청각 요소를 그 시절의 모습을 구현해냈다는 것이다. 비슷하게 흉내 낸 게 아닌 게임인지 만화인지 구분이 어려울 만큼 완벽한 구현이다.

완벽한 구현을 위해 대부분의 과정이 수작업인 셀 애니메이션 방식을 택했다

이러한 구현은 작업 방식에서부터 출발한다.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활용하는 일반적인 게임 제작 과정과 달리, [Cuphead]는 종이와 펜을 이용해 모든 프레임의 그림을 손으로 하나하나 그리는 셀 애니메이션(cel animation)을 택했다. 물론 해당 방식도 디지털 작업을 할 수 있으나 1930년대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직접 손으로 그리는 방식으로 진행한 것이다. 게임 내에는 작업 방식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지 않으나, 게임 발매 전후로 수차례 공개된 메이킹 필름(making flim)을 통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해당 영상을 보고 난 뒤 [Cuphead]를 접한다면 발매가 수차례 연기된 걸 납득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 몰덴하우어 형제에 대한 경외감마저 들 거다.

사운드 노이즈부터 화면 필터까지 모든 면에서 1930년대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당시 만화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연출도 다방면으로 신경 썼다. 1930년대의 양식을 그대로 따르는 캐릭터 디자인과 화풍은 기본이며, 지독하게 과장된 연출은 시선을 압도한다. 드래곤의 입에서 튀어나온 불덩이들이 행진하거나 해바라기가 기관총처럼 변해 씨앗을 발사하는 모습 등이 그 예로 기괴하지만 그럴싸해 보이기까지 해 독특한 즐거움을 준다. (<톰과 제리>, <뽀빠이> 등의 만화에서 귀상어 머리가 망치로 변한다거나 꼬리를 프로펠러처럼 돌리는 모습과 일맥상통한다) 또한 브라운관의 투박한 느낌을 그대로 담기 위해 화면 필터를 사용했고, 예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재즈 음악과 성우 연기에 더해 의도적으로 미묘한 사운드 노이즈까지 입혔다. 무엇보다 구형 텔레비전에서 영상을 재생했을 때 정말 만화를 방영하는 듯 위화감이 없다는 점에서 [Cuphead]의 구현률이 얼마나 완벽한지 보여 준다.

특별한 퍼즐 요소 없이 차례대로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단순한 게임 구성

그렇다면 게임으로써 재미는 어떨까? 만화와 헷갈릴 만큼 완벽하게 구현했더라도 재미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단순하지만 어렵고 도전적이면서 재미있다’.

게임 구성은 단순하다. 런&건(Run and Gun)을 기본으로, 별도의 플랫포머 구간 없이 보스만 쓰러뜨리면 되는 보스 배틀(Boss Battle)과 기존 런&건 장르처럼 일직선으로 구성된 스테이지를 돌파하는 플랫포머(Platfomer)로 나뉜다. 각 스테이지는 평균 2~3분 내외, 길어봐야 5분이 넘지 않고 끝낼 수 있을 만큼 길이가 짧다. 복잡한 길 찾기나 퍼즐 요소는 없어 그저 눈앞에 보이는 적을 쓰러뜨리면서 최종 보스까지 도달하면 된다.

보기와는 달리 보스 배틀과 플랫포머는 훨씬 어렵고 까다롭다

그러나 플레이어가 마주하는 보스와 플랫폼은 절대 쉽지 않다. 아니. 쉽지 않은 게 아니라 어렵다. 보스의 공격은 직관적이며 눈으로 보고 반응하기 어려울 만큼 난감한 공격은 없다. 그러나 공격 방식이 복잡하고 공격-회피 타이밍을 숙지하기 까다로워 대처하기 쉽지 않다. 또한, 보스가 받은 피해량에 따라 모습이 바뀌면서 공격 패턴과 피격 범위도 달라지기 때문에 같은 보스라도 전혀 다른 대처 방식을 요구하기까지 한다. 플랫포머 스테이지도 마찬가지. 플레이어의 앞을 가로막는 복잡한 플랫폼 구조, 다양한 함정, 교묘한 위치에서 공격하는 적은 끊임없이 손을 움직여야만 돌파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각 스테이지에 대한 충분한 학습은 필수이며 이를 위해서는 반복적으로 시도해야만 한다. 얼마나 반복해야 하는지 감이 안 온다고? 죽지 않고 끝내면 2~3분 걸릴 스테이지를 1시간 넘게 붙잡고 있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을 수 있다.

고난이도 게임이지만 게임 전체의 난이도 상승은 점진적이며 조절 가능하다

단, 무작정 고난이도 스테이지만 담아낸 건 아니다. 게임 전체 흐름을 살펴보면 난이도 상승이 매우 점진적이다. 게임 초반 스테이지는 런&건 장르에 익숙한 사람에 한해서는 어려움을 못 느낄 수준의 난이도다. 반면 중후반부터는 숙련자도 여러 번 시도해야 할 만큼 높은 난이도로 구성되어 있어, 초-중-후반의 난이도 차이가 확실하게 느껴질 정도다. 여기에 각 스테이지 진입 시 난이도를 설정할 수 있어 플레이어가 자신의 수준에 맞도록 조절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쉬움/easy'과 '보통/regular’ 난이도가 제공된다)

체감 난이도에 의한 플레이어의 이탈을 막기 위해 몇 가지 장치를 마련했다

플레이어의 이탈을 막고 게임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도전의식을 자극할만한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1) 랭크 시스템 2) 스테이지 진척도 3) 전문가(expert) 난이도 가 바로 그것이다. 숙련자에게는 랭크 시스템을 통해 높은 랭크에 도전하고 클리어 이후에도 반복 진행을 하게끔 유도하고, 초심자에게는 스테이지 진척도를 보여주어 게임 숙련도를 체감할 수 있게 하며 중도 포기를 방지한다. 그리고 고난도 게임을 즐기는 매니아들에게는 추가 난이도를 제공해 극한의 난이도를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덕분에 게임 숙련도에 상관없이 도전의식을 자극해 게임의 지속이 가능하고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솔직히 약점이라 할 만한 부분은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완벽한 게임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약점은 없을까? 솔직히 말하면, 약점이라 할 만한 부분은 찾기 어렵다. 1930년대 만화를 완벽하게 재현해낸 시청각적 요소에 도전적인 난이도와 구성을 갖췄고 적당히 흥미로운 배경 스토리까지 담고 있으니 완벽에 가깝다 해도 무방할 게다. 다만, 굳이 약점을 잡아내자면 런&건 장르라는 측면에서 호불호 내지 아쉬움이 생길만한 여지가 있다. 바로 보스 배틀에 비해 플랫포머 스테이지의 수가 적다는 점이다.

기존 런&건 장르는 하나의 스테이지가 플랫포머와 보스 배틀이 결합된 구성이 주를 이뤘다. 초중반은 플랫포머 구간이 진행되고 후반에 보스 배틀이 이루어지는 스테이지 구성은 정석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진행 시간을 기준으로 플랫포머 구간이 보스 배틀보다 더 많은 분량을 차지했고, 플랫포머 구간이 주(main)이며 보스 배틀은 보조(sub)하는 역할로 보여졌다.

굳이 꼽자면 기존 런&건 기준에 비해 플랫포머 스테이지가 부족하다는 아쉬움 정도?

그러나 [Cuphead]는 보스 배틀과 플랫포머가 별개의 스테이지로 분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플랫포머 스테이지의 수가 보스 배틀 스테이지의 수에 비해 매우 적다. (플랫포머 6개, 보스배틀 19~28개) 이같은 기존 런&건 스테이지 구성을 기대한 사람이라면 (게임 자체의 재미를 떠나) 보스 배틀의 비중이 높은 구성에 만족하기 어려울 수 있다. 더군다나 [Cuphead]가 최초로 시연됐던 E3 2015 당시 플랫포머 스테이지가 없다는 비판이 있었던 걸 생각하면, 플랫포머 스테이지의 수가 적은 데에 불만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행복하게 웃고 있는 몰덴하우어 형제(좌측 2인)의 다음 도전이 너무나 기대된다

이쯤 해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몰덴하우어 형제의 도박은 어떤 결과를 맞이했을까? 1930년대 만화를 완벽하게 구현한 시청각 요소에 어렵지만 재미있게 지속할 수 있는 게임 구성, 그리고 약간의 호불호만 있을 뿐 약점이 없는 완성도라면 대박 나지 않았을까? 아니나 다를까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 [Cuphead] 판매량이 100만장을 돌파했다. 작지 않은 규모의 중견 개발사도 100만 장을 파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처음 게임 개발을 시도한 형제가 100만 장을 팔아치웠다니 실로 엄청난 성과임이 틀림없다.

무엇보다 악마를 무찌르고 모든 빚을 갚는 데 성공한 컵헤드와 머그맨처럼 몰덴하우어 형제도 그동안 겪은 고생을 모두 털어버릴 만큼 대단한 성과를 거뒀다. 말 그대로 [Cuphead]는 형제의 인생 그 자체, 인생 게임이라 불러야 할 거다. 포기하지 않고 게임을 완성해준 몰덴하우어 형제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는 바이며 당신들의 다음 도전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

못다 한 이야기

- 게임 발매 전후로 '극악의 난이도'라고 소문이 많이 돌았는데 그 정도는 아니다. 본문에서도 언급했지만 난이도 설정은 점진적이어서 레귤러 난이도 기준으로 '하다 보면 누구나 끝낼 수 있는' 수준이다. 2D 플랫포머에 강한 사람이라면 4시간 전후로도 끝낼 수 있다. 평균 클리어 타임은 6시간 전후.

- 게임 발매 전 공개된 자료를 찾아보면 지금은 볼 수 없는 보스와 스테이지가 몇 개 있다. E3 2015 이후 대폭 수정을 가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초기 구상과 지금의 모습은 크게 달랐던 듯하다. 삭제된 요소 중에 [Space Invaders]를 패러디한 스테이지나 익숙한 디자인의 박쥐 보스가 있는 것으로 보아 초기에는 오마주를 많이 했을 걸로 예상된다.

-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무기, 특수 기술 습득을 위한 이벤트 스테이지, 흑백 필터 해금 등 자잘한 부가 요소도 많다. 그중 흑백 필터 해금은 플랫포머 스테이지에서 적을 죽이지 않고 클리어하는 '평화주의자(P)' 랭크를 받으면 얻을 수 있는데, 평화주의자 랭크를 달성하기가 매우 어렵다. 재미있는 건 해금 보상인 흑백 필터조차 게임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라는 점. 사실상 [Cuphead]의 최고난이도 컨텐츠에 해당한다.

- 인터페이스가 매우 간소화되어 있다. 그 덕에 게임 화면이라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는다. 인터페이스가 아주 큰 개발 초기와 비교하면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만화적인 느낌을 완벽하게 주기 위해 많은 신경을 썼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부분.

기술적 문제 ( 사용 플랫폼 : PC )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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